바이블가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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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일	2004-09-10 (금)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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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안의 성서 해석

성서의 의미와 말씀의 현실화
정태현 신부(주교회의 성서위원회)

성서는 역사 안에서 인간 저자들이 성령의 영감을 받아 기록한 하느님의 말씀이다.
성서 안에 담긴 내용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하느님에 관한 계시로서 그분이 누구시며 그분이 인간과 다른 피조물 안에 당신을 어떻게 드러내시는지 가르쳐 준다. 다른 하나는 인간에 관한 계시로서 인간이 무엇이며 그가 어떻게 하느님께 갈 수 있는지 알려준다. 이 둘은 동전의 양면과 같아 다같이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통교를 드러내며 성서의 올바른 독서는 이 통교를 더욱 심화시키고 원활하게 하는 데 이바지한다.
아래 글의 요지는 교황청 성서위원회의「교회 안의 성서해석」에 바탕을 둔다.

Ⅰ. 성서의 다앙한 의미

성서는 역사 안에서 사람이 기록한 책이다.
따라서 성서 저자가 역사적인 배경, 곧 '삶의 자리' 안에서 전달하고자 한 문자적 의미를 밝히는 일은 성서 해석의 가장 기본이 되는 작업이다. 문자적 의미(literalsense)는 축자적 의미(literalist sense)와 다르다. 문자적 의미는 성서 본문 그 자체가 보여주는 의미 또는 성서 저자가 전달하고자 했던 역사적 의미를 말하는데 반해. 축자적 의미는 역사적 배경과 앞뒤 문맥 및 성서 전체의 흐름과 관계없이 글자 하나하나가 보여주는 표면적 의미를 말한다. 근본주의자들은 자기네 편협한 이론과 배타적 태도를 정당화시키기 위하여 축자적 의미를 곧잘 논쟁의 무기로 이용한다.
성서는 성령의 영감을 받아 기록된 하느님의 말씀이다. 그러므로 성서는 주로 역사적인 배경과 저자의 문학양식과 기법에 바탕을 둔 문자적 의미와 더불어 성령의 영감에 바탕을 둔 영성적 의미도 포함한다. 물론 오늘날 문자적 의미와 영성적 의미를 엄격하게 구별하는 것은 점차 잘못으로 드러나고 있다. 영감 받은 저자가 전달하고자 했던 문자적 의미 안에는 이미 영적인 교훈이나 가르침도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럴지라도 우리는 성서 본문을 좀더 풍요롭게 해석하기 위하여 문자적 의미와 영성적 의미를 구분하고 영성적 의미를 다시 신앙적 의미, 윤리적 의미, 종국적 의미로 세분하기로 한다. 문자적 의미, 신앙적 의미, 윤리적 의미. 종국적 의미의 구분은 13세기 덴마크의 아우구스티노의 저 유명한 시에서 따온 것이다.
글자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가르치고(문자적 의미)
우화는 무엇을 믿어야 할지를 가르치며(신앙적 의미)
윤리는 무엇을 행해야 할지를 가르치고(윤리적 의미)
유추는 무엇을 바라야 할지를 가르친다(종국적 의미)

1 . 문자적 의미
성서는 역사 안에서 태어났다. 그러므로 성서의 의미를 정확히 파악하고자 하는 사람은 역사의 현장과 성서를 태동시킨 삶의 자리에 유의하여 성서를 읽어야 한다. 여기서 '역사의 현장'이라 함은 성서의 사건이 일어난 시간과 장소를 말한다. 그 다음 '삶의 자리'라 함은 성서의 인물들이 몸담고 있던 문화. 종교. 정치. 경제. 사회의 틀을 말한다. 성서의 사건들이 어느 시대에 어느 곳에서 일어났는지, 성서에 나오는 사람들이 어떤 환경에서 살았는지를 살펴보지 않고서는 성서 본문의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
성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여러 세대에 걸쳐서 다양한 문학양식을 이용하여 자신들이나 자신들이 속한 공동체의 생각과 믿음을 표현한 책이다. 그래서 성서는 중 ·고등학교의 국어책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국어 책에는 시. 소설. 수필, 희곡. 문학평론. 민담, 속담이나 격언 등 다양한 문학양식이 나온다. 그리고 때로는 향가나 시조처럼 오래된 운문과 춘향전와 같은 고전 소설도 나온다. 이같은 문학양식들은 그 개별 특성을 잘 살펴가며 접근해야 올바로 파악된다. 문학양식과 더불어 저자들의 특정한 문학적 기법이나 사상. 그들이 속한 공동체의 특정한 신앙관은 성서의 문자적 의미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이처럼 성서를 태동시킨 역사적 배경과 삶의 자리. 성서 저자가 이용한 문학양식과 문학기법, 특정 저자나 공동체의 사상과 신앙관 등을 살펴가며 성서 본문의 의미에 접근하는 것을 역사비평 주석이라 한다. 역사비평 주석이 추구하는 바는 성서 본문이 태어난 상황 안에서 그 정확하고 단일한 의미를 찾아내는 것이다. 그러나 본문의 정확하고 단일한 의미를 찾아내려는 역사 비평의 이 같은 노력은 기록된 본문이 복합적인 의미를 지닐 수 있다고 보는 언어학과 해석학의 결론과 충돌하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역사비평 주석은 언어학과 해석학, 그리고 심리학, 사회학, 인류학 등 다른 학문들의 연구 결과로 보완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성서가 성령의 영감을 받아 기록된 하느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한편, 역사의 현장과 삶의 자리에서 성령의 영감을 받아 기록된 성서는 성령의 도움으로 교회 공동체와 그리스도인 개인들의 믿음과 삶에 영향을 미치며 그 의미가 더욱 깊어지고 풍요해진다. 아래에 다루게 될 세가지 영성적인 의미들은 이 사실에 바탕을 둔다.

2. 영성적 의미
성서는 성령의 영감을 받아 기록된 하느님의 말씀이다. 성령은 하느님의 숨(창세2.7)이요 예수님의 숨(요한 20.22)이다. 숨에는 들숨과 날숨이 있다 성서는 하느님의 숨을 들이마셨다가 내쉰다. 성서의 날숨은 우리가 무엇을 믿어야 할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결국 무엇을 향하여 나아가야 할지를 가르쳐 준다. 신. 구약성서 전체를 관통하는 이 가르침들은 우리의 삶과 믿음에 역동성을 부여하면서 성서를 읽을 때마다 우리를 자라게 한다.
가) 신앙적 의미
구약성서는 하느님만이 스스로 존재하시고 이 세상 만물에게 생명을 주시며 홀로 거룩하시고 홀로 유일한 주권자이심을 드러낸다. 그분은 어느 누구에게서도 방해나 도움을 받지 않으시고 세상을 창조하시고 통치하신다. 그분 창조사업의 최대 걸작인 인간은 그분에게 온전히 속해 있으며 인간의 행복과 불행. 구원과 멸망은 인간이 그분과 어떤 관계를 이루느냐에 달려 있다. 구약성서에 따르면 하느님께서는 이런 구원의 가르침을 이야기를 퉁하여(선사시대), 조상들의 믿음과 순종을 통하여(성조시대), 계약과 율법과 예언을 통하여(이스라엘 시대) 전해주셨다.
신약성서는 하느님의 창조사업과 구원사업이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가르침을 통하여 가장 완전하게 성취되었다고 증언한다.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통하여 만물을 창조하셨고(골로 1,16) 당신이 사랑하시는 세상을 구원하시고자 그분을 보내셨다(요한 3,16)
인간의 구원은 예수님이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하느님 나라는 하느님이 어떤 분이시며 어떻게 세상을 다스리고 계신지 구체적으로 밝힌다. 하느님 나라는 자비로운 임금님으로서 당신의 백성. 그 가운데에서도 가난하고 버림받고 고통받는 '어린 백성'에게 우선적으로 베푸시는 선정(善政)을 가리킨다. 이 하느님 나라는 개인의 차원에서 영원한 생명과 동일시된다(요한복음). 영원한 생명은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시며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믿고 그분을 통하여 아버지 하느님을 아는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신비체인 교회는 성령의 도움으로 이 믿음을 간직하고 키워나간다.
결국 성서의 신앙적 의미란 세상을 창조하시고 구원하시는 아버지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에 대한 가르침이다. 이 성서의 가르침은 교회의 교의로 선포되고 전례 안에서 재현된다
나) 윤리적 의미
시나이 계약은 구약성서의 정점이다. 하느님은 모세를 통하여 시나이 산에서 이스라엘 백성과 계약을 맺으신다. 먼저 당신이 누구시며 이 백성에게 어떤 은혜를 베푸셨는지 밝히신 다음. 그분의 백성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곧 그들이 무엇을 행하고 무엇을 행하지 말아야 할지 구체적으로 가르쳐 주셨다. 율법은 이 가르침의 총칭이다 실제로 율법을 지칭하는 히브리말 '토라'는 '가르침' 이라는 뜻이다. 율법이란 속된 인간이 거룩하신 하느님께 가까이 가는 길을 가르쳐 주는 것이라 하겠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당신의 선의와 주도로 이스라엘과 맺으신 시나이 계약은 이스라엘의 불충과 반역 탓에 계약 직후부터 (출애 32장) 파기뒬 위험에 수없이 직면한다. 인간자신의 노력만으로 율법을 제대로 지키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이 시나이 계약은 하느님이 보내신 외아들을 통하여 새 계약으로 완전하게 거듭난다. 예수님은 팔레스티나의 가난하고 소외된 대중들, 특히 세리와 창녀로 대표되는 윤리적으로 가난한 죄인들에게 자비와 사랑을 베푸시면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셨다. 그리고 그에 대한 응답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심지어 원수들에게까지 사랑을 베풀라고 요구하셨다. 구약의 하느님께서 시나이 계약에서 백성에게 베푸신 은혜를 먼저 열거하시고 그에 대한 응답으로 율법의 준수를 요구하신 것과 같은 맥락이다. 마침내 예수님은 과월절 만찬 자리에서 당신의 몸과 피를 내주심으로써 제자들과 새 계약을 맺으시고, 서로 사랑하라고 하시면서 새 계명을 주셨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흘리신 당신의 피로 이 새 계약을 봉인하셨다. 예수님의 십자가상 죽음은 하느님이 어떤 분이 신지, 그리고 인류에 대한 아버지. 하느님과 아들 예수님의 사랑이 얼마나 진실한지를 가장 선명하게 드러낸 사건이다.
이제 인간은 이 하느님의 사랑에 감복하여 그 사랑을 이웃과 온 세상에 전하는 일에 온전히 투신해야 한다.
성서의 윤리적 의미는 교회 공동체와 세상, 개인과 현실을 연결시켜 주는 구실을 한다. 그리스도교 공동체와 그리스도인은 세상과 현실에서 동떨어진 실체가 아니라, 세상의 어둠을 비추는 빛과 현실의 부패를 막는 소금이 되어야 한다.
다) 종국적 의미
성서의 인생관은 '순례의 여정'이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인간의 생물학적인 생명은 흙에서 나왔으니 흙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지만, 그의 인격 깊은 곳에 자리잡은 영적인 생명은 하느님에게서 받은 만큼 하느님께 돌아가야 한다. 하느님에게서 나온 생명이 방향과 목적을 잃어버리고 방황하거나, 하느님이 아닌 어떤 것에 집착하여 안주해서는 안 된다. 구약의 하느님은 안주하거나 방황하는 인간에게 방향과 목적을 제시함으로써 순례의 여정으로 이끄시며 어려운 순례길에 동행해 주는 분이시다. 이집트에서 오랫동안 안주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시나이 광야로 불러내시고 자칫 방황하기 쉬운 광야 생활에서 가나안 복지라는 방향을 정해 주심으로써 그들의 삶을 순례의 여정으로 바꾸어 주셨다. 뿐만 아니라 만남의 천막을 통하여 그들 가운데 현존하시면서 순례의 동행자가 되어 주셨다. 그러나 그토록 기다리던 가나안의 정복도, 그곳에서의 안정된 생활도, 왕정제도와 예루살렘 성전도 그들의 최종 목적지는 아니었다. 심지어 그들에게 구원을 보장해 주는 율법조차도 순례의 종착역이 아니라 간이역에 지나지 않았다.
신약성서는 순례자의 완전한 모범으로 나자렛 예수님을 제시한다. 아버지의 품에서 인간의 혈육을 취하여 이 세상에 내려오신 그분은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 주시고 그분의 뜻을 세상에 실현시키신 다음 다시 아버지께 올라가셨다. 먼저 나자렛의 안정된 삶을 뒤로하시고 아버지의 영에 이끌려 유다 광야로 들어가 공생활을 준비하셨다. 복음서 저자들은 예수님의 사생활에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고 공생활만을 그분의 순례 여정으로 소개한다. 그 여정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다음 갈릴레아에서 시작하여 예루살렘에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심으로써 끝났다. 이어서 교회의 순례 여정이 이어진다. 교회의 여정은 오순절에 종교의 중심인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세계의 중심인 로마에 까지 그리고 예수님이 다시 오시어 온 세상을 아버지께 바칠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지상의 나그네인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와 교회를 자기 순례 여정의 탁월한 동행자와 인도자로 삼는다.
이처럼 그리스도인이 교회안에서 성령의 도움을 받으며 아들과 함께 아버지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을 가르쳐 주는 것이 바로 성서이다.
이상 세 가지 영성적 의미는 성서 본문의 어느 한 대목에 집착하지 않고 시야를 넓혀 성서 전체의 흐름과 맥락을 살피면서 읽을 때에 비로소 얻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은 이사악과 야곱과 요셉과 모세에게 되풀이된다. 일반적으로 구약성서에서 나중에 나온 기록은 먼저 나온 기록에 의존한다. 또 신약성서 저자들은 구약성서가 신약의 사건들을 미리 예시하고 계시하였다고 믿고 구약의 말씀이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삶과 가르침 안에서 실현되었다고 확신하였다. 이는 신. 구약성서 전체가 동일한 성령의 영감에 따라 기록되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따라서 다양한 영성적 의미를 밝히기 위해서는 한 본문을 더 큰 본문의 맥락과 성서 전체의 사상적 흐름 안에서 재독(再讀)할 필요가 있다. 이때 같은 단어나 비슷한 표현들을 한데 모아놓은 성서어휘색인(concordance)이나 난외 참고구절이 매우 유익한 도구가 될 것이다.

3. 더욱 충만한 의미
성서는 전통 안에서 탄생되고 동시에 새로운 전통을 낳는다. 그리스도교에서 성서와 성전을 동일하게 중요시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비교적 최근에 나온 더욱 충만한 의미'(sensusplenior)라는 용어는 어떤 본문에서 성서 저자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지만. 하느님께서 성령의 영감을 통하여 그 본문 안에 담고자 하신 깊은 의미를 가리킨다. 이 의미는 보통 후대의 교부 저서나 공의회에서 밝힌 교의적 전통으로부터 부여된다. 예를 들어 창세 3,15의 "여자와 여자의 후손"을 성모님과 그분의 아들 예수님으로 이해하는 것.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에 관한 신약성서의 언급들에서 삼위일체 교리를 도출해 내는 것 등이다. 이때 성모님과 예수님은 "여자와 여자의 후손"보다 더욱 충만한 의미요. 삼위일체 교리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에 관한 언급보다 더욱 충만한 의미이다.
한 가지 유의할 점은 영성적 의미나 더욱 충만한 의미를 내세우기에 앞서 언제나 문자적 의미를 분명히 밝히고 존중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 일을 소흘히 하면 주관적 해석으로 기울어져 본문 해석의 정당성을 상실할 수 있다 이런 위험은 성서 본문 자체에는 없는데 후대의 전통 안에서 발전한 의미를 무리하게 그 본문에 부여하려 할 경우에도 생긴다.

Ⅱ. 성서 말씀의 현실화
위에서 우리는 성서의 다양한 의미를 살펴보았다. 이 의미들은 성서의 세계와 우리를 연결시키면서 우리에게 믿음과 윤리와 삶의 목적을 가르쳐 준다. 이제 극동의 한 지역에서 새로운 천년기를 맞고 있는 우리가 다양한 의미를 지닌 성서를 어떻게 이해하고 그 이해한 바를 어떻게 우리 삶에 적용시킬 수 있는지 살펴볼 차례이다. 먼저 가를릭 성서해석의 원칙들(「교회 안의 성서해석」 제3장 참조)을 일별하고 이 원칙들에 근거하여 성서의 말씀을 현실화하는 방법을 모색하겠다.
1 . 가톨릭 성서해석의 원칙
가톨릭 성서해석은 몇 가지 원칙 아래에서 이루어진다.
첫째, 가톨릭 성서해석은 본문의 의미를 여러 가지 차원에서 더 잘 이해하도록 도와주는 학문적 방법과 접근이면 어느 것이건 자유롭게 이용한다. 그 가운데에서도 본문의 탄생 경위와 맥락 저자나 편집자의 사상들을 탐구하는 역사비평의 제방법론들은 특별한 무게를 지닌다.
둘째. 가톨릭 성서해석은 성서 자체의 재해석을 존중한다. 한 성서 본문이 다른 성서 본문을 재해석하고 구약과 신약이 서로를 조명하며 성서 말씀이 사건의 의미를 사건이 성서의 의미를 밝혀준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셋째, 가톨릭 성서해석은 교회의 살아있는 전통 안에 자리잡는다. 교부들의 예표론 적이고 우화적인 해석을 존중한다. 교부들이 성서를 읽고 해석하는 기회는 주로 교회 안에서, 특히 전례가 진행되는 동안에 주어졌다. 그래서 교부들의 성서 해석은 언제나 신학적이고 사목적 성격을 지녔다. 그러면서도 교부들이 본문의 자구성과 역사성을 포기한 예는 매우 드물다
마지막으로 가톨릭 성서해석은 그 정통성을 보장해 줄 최종 책임을 교도권에 위임한다. 그러나 교도권은 "하느님 말씀보다 높은 것이 아니라, 전해 받은 것만을 가르침으로써 그 말씀에 봉사한다"(「계시헌장」, 10항). 맡겨진 책임을 다 할 수 있도록 교도권은 신학자들과 주석가들과 다른 전문가들의 자문을 구한다.
이런 가톨릭 성서해석의 원칙들을 염두에 두면서 실제로 어떻게 하면 성서의 말씀을 내 것으로 받아들여 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지 모색해 보기로 하자.

2.성서 말씀을 듣고 삶에 연결하기
가) 성서를 읽기 전에
성서를 읽거나 듣기에 앞서 성서가 어떤 책인지 먼저 알아야 하겠다 그래야 성서를 흥미 본위의 주간지나 정보 습득을 위한 일간지를 읽어제끼듯 가볍게 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성서가 어떤 책인지 알기 위해서는, 성서를 누가 언제 어떻게 어떤 배경에서 무슨 목적으로 썼는지를 밝히는 간단한 입문서를 먼저 읽어 두는 것이 좋다.
또한 성서의 틀을 이루는 이스라엘의 역사와 예수 사건과 초대 교회의 역사에 관한 지식도 필요하다.
성서가 지닌 몇 가지 특성을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성서는 인간의 역사 안에 개입해 들어오신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며 오랜 기간을 두고 수많은 사람들의 입과 손을 거쳐 서서히 완성되었기에 역사성을 지닌다
둘째. 성서는 동양과 서양의 접경 지대인 고대 근동의 문화권에서 태어나 동서양을 넘나들며 모든 이에게 접근할 수 있는 보편성을 지니게 되었다
셋째, 성서는 빵과 포도주의 형상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나누어주는 성체성사처럼 인간의 제한되고 부족한 말을 통하여 하느님과 그리스도의 말씀을 전달하므로 성사성을 지닌다.
넷째, "성서는 읽는 이와 함께 성장한다."는 대 그레고리오 교황의 증언처럼 성서 말씀은 그것을 읽는 독자와 공동체를 자라게 하는 역동성을 지닌다.
이런 특성들을 감안하여 성서를 읽으면 편협한 해석이나 단순한 지식 습득의 위험에서 벗어나 신비롭고 조화롭고 풍요로운 성서의 세계에 깊이 들어갈 수 있게 될 것이다
나) 성서 읽기 ·듣기 ·쓰기
위에서 언급한 대로 성서는 성령의 영감을 받아(들숨) 기록된 책이기에. 그 본문을 읽는 이에게 성령의 영감을 불어넣는다(날숨) 그런데 성령의 소리는 호렙 산에서 엘리야를 찾아온 주님의 "조용하고 부드러운 소리"(1열왕 19.12)와 같아서 주의를 기울여 마음의 귀로 들어야 들린다. 소란스런 분위기에서 또는 의무감에서 쫓기듯 성서를 읽거나 듣게 되면 성령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이는 성서 쓰기를 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불자들은 불경을 베껴 쓰기 전에 목욕재계하고 단정하게 앉아 필사한다. 많이 읽고 많이 쓰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우리 마음에 하느님의 말씀을 정성껏 받아들여 새기고 보존하는 것이 목적이다.
성서를 읽거나 들으면서 마음에 와 닿는 구절이 있으면 먼저 그 구절의 문자적 의미를 헤아린다. 이때 권위 있는 주석서나 주해성서의 도움을 받는다. 그리고 그 구절을 앞뒤 문맥이나 성서 전체의 큰 사상적 흐름과 연결시켜 반성하고 초세기 교부들의 우화적 해석과 예형론을 참조하여, 본문에 감추어진 영성적 의미와 더욱 충만한 의미를 밝혀낸다 이 과정에서 우리에게 친숙한 유불선 종교의 경전이나 우리 조상들의 사상과 지혜가 담긴 고전들의 가르침을 참조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이로써 성서는 비옥한 만남의 장을 열어 계시의 보편성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낼 수 있다
다) 묵상
묵상은 밝혀진 본문의 의미를 조용히 되새기는 시간이다. 묵상은 성서 본문을 분석하거나 그 말씀의 타당성을 평가하는 시간이 아니다. 이 점에서 우리 동양인은 서양인보다 훨씬 유리한 입장에 서 있다. 동양의 전통은 분석보다는 직관을, 부분보다는 전체를. 개성보다는 조화를 중요시한다. 성서의 독자는 말씀을 분석하려 하지 말고 말씀이 나에게 다가오기를 기다려야 한다. 또한 말씀의 의미를 한 가지로 제한하지 말고 그 안에 담겨 있는 복합적인 의미를 받아들여야 한다. 무엇보다 말씀 안에서 하느님과 예수님의 마음을 읽고 자기 마음을 그분들의 마음과 일치시키려고 노력해야 한다.
때로는 본문의 의미가 분명히 드러나지 않을 수도 있다. 본문에 계시된 내용이 너무 높고 깊어서 독자의 이해능력을 뛰어넘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지혜로운 독자는 그 내용을 마음에 새겨 두고 자신의 삶 안에서 완전히 밝혀지기를 기다린다. 이는 그리스도에 관한 사정을 마음속에 깊이 새겨 오래 간직하신 성모님(루가 2.19.21)의 지혜로운 태도와 같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선불교에서는 스승이 제자에게 화두를 즐겨 던진다. 화두를 받은 제자는 그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그 뜻을 깨우칠 때까지 몇 달이고 몇 해고 되풀이한다.
라) 기도
기도는 성서 안에서 성령의 날숨으로 다가오시는 하느님과 그리스도의 말씀과 마음에 응답하는 것이다 이 응답은 당연히 감사와 찬미를 수반한다. 또한 기도를 통하여 우리의 삶을 그분들께 맡기고 거룩하게 변화시켜 주시도록 요청한다. 기도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현존 안에 머물고자 하는 원의이다.
마) 삶의 현장과 연결하기
성서 안에는 인류의 오랜 체험이 농축되어 있다. 역동성과 현장성을 놓고 보더라도 성서는 교회의 어떤 교리서나 신학서적보다 앞선다. 성서에 나오는 이야기나 사건들은 모두 인간 체험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삶의 현장에서 일어나는 온갖 문제를 다 다룬다. 또 성서의 언어와 표현들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직접적이고 대중적이다. 따라서 성령의 날숨으로 우리에게 다가온 말씀을 자신의 구체적 상황에 적용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 말씀은 언제나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지를 담고 있어서 나의 삶과 공동체의 현재 상황을 개선하도록 해준다.
성서의 말씀을 현실에 적용시키려는 현실화는 오늘의 많은 문제들에 빛을 던져 준다 그 가운데에서도 새로운 천년기를 맞는 이 시점에서 말씀의 현실화는 인간 생명의 수호. 자연보존 가난한 나라들의 부채 탕감, 세계 평화 추구에 더 역점을 두어야 한다. 이런 일들은 결국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인간과 자연과 공동체의 본디 모습을 회복하려는 노력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