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마리아론
1. ‘성서에 나타난 마리아’ 에 대한 정리
구약에서의 마리아는 아직 하느님의 구원계획에 숨어 있었고, 신약에서도 겸양스럽게 뒷전에 머물러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성서가 마리아에 관해 완전히 침묵한다고 말하는 것은 사실을 그르치는 것이다. 우리는 성서구절로부터 ‘역사적 마리아’를 알아낼 도리는 거의 없으나 ‘케리그마적 마리아’는 우리에게 분명하게 제시된다.
1.1. 구약성서
구약성서는 일종의 희망의 책이다. 악의 현실에도 불구하고 그 악이 선을 이기지 못하리라는 희망으로부터 시작하여(창세 3,15) 인류의 역사는 마침내 늑대와 새끼 양이 함께 어울리고, 표범이 숫염소와 함께 뒹구는 종말론적 희망을 향하고 있다(이사 11,6-9). 이 모든 희망과 예언은 메시아라는 인물에 집중되고 있다. 그 메시아가 누구인지 서서히 밝혀진다. 바로 여인 에와의 후손, 다윗의 후손, 우리 인간과 하나도 다름없이 한 여인(issah)으로부터 태어날 아기요, 임마누엘(Immanuel)이라 불리게 될 아기이다(이사 7,14). 여기에 그 메시아와 더불어 메시아의 징표를 알려줄 어머니로서의 여인이 함께 드러나고 있다. 그 여인은 소박하고 순진한 ‘알마’(almah)요(이사 7,14), 하느님께 성실한 이스라엘의 ‘남은 자’(anawim)로서의 ‘시온의 딸’이다(미가 4,1-14; 스바 3,14; 즈가 9,9; 요엘 2,21-27; 이사 54,1-3 참조). 그 출산자(yoledah)는 고통을 겪게 되겠지만, 메시아적 기쁨(chaire)에 초대된 여인이다. 구약 안에서 그 여인은 메시아만큼이나 신비에 싸여 있다. 그러나 바로 그 메시아가 예수 그리스도인 만큼, 그 여인은 마리아라고 말할 수 있다.
1.2. 신약성서
1.2.1. 바울로
사도 바울로는 그의 서간에서 마리아의 이름을 전혀 언급하고 있지 않다. 그는 바로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그의 어머니 마리아를 ‘여인’이라는 표현으로 단 한 번 언급할 뿐이다(갈라 4,4-5). 그렇지만 이 ‘여인’은 그리스도의 인성을 위해서, 즉 죄를 제외하고는 우리와 똑같이 인간이 되신 그리스도의 육화를 위해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교부 바실리오는 사도 바울로가 신중하게 선택한 용어(특히 전치사)가 ‘여인을 통해서(dia)’가 아니라 ‘여인으로부터(ex)’였다는 점에 주목하면서, 그리스도의 육화에서 이 ‘여인’의 중요한 역할을 지적하고 있다. 사도 바울로에게, 특히 교부들에게 구원은 인간의 신화(deificatio) 개념과 통한다. 그러므로 참된 그리스도의 육화가 아니면 참된 인간의 신화, 즉 참으로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일, 구원은 물거품이다. 이런 맥락에서 사도 바울로는 우리 모두가 진정한 하느님의 자녀가 되도록 하기 위하여 예수께서 참으로 사람이 되신 것이라고(‘예수의 참된 인성’) 강조하고 있다. 사도 바울로에게 있어서 그리스도의 모친인 이 ‘여인’은 그리스도 육화의 신비 깊숙한 곳에 자리잡고 있다.
1.2.2. 마르코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에 관한 복음 진술의 요약은 다음과 같다.
가) 개신교와 가톨릭 신학자들 가운데에서 이 자료를 ‘반마리아적’으로 보는 견해들이 있다(3,31-35; 6,1-6). 그러나 예수가 마리아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비밀의 메시아라는 점이 강조되고 있을 뿐이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마르코는 예수와 가장 가까운 사람들조차 그의 본연의 정체를 깨닫지 못하였음을 여기서 더욱 분명히 하려는 것이었다.
나) 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까지 마리아에 관한 마르코의 중요한 자료들은 등한시되거나 ‘반마리아적’ 성향의 것으로 취급되었다. 다른 신약성서가 밝혀 내고 있는 마리아의 모습과 연결시키지 못하고 있었다. 즉 그분이 “은총을 가득히 받은 분”일 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과 뜻을 철저하게 따른 신앙의 모범이시라는 점을 따로 구분하고 있었다.
다) 마리아에 관한 마르코의 진술들은 분명 하나의 충격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것은 보다 큰 새로운 신앙을 위해 극복되어야 하는 하나의 과정이다.
라) 마르코 복음에는 ‘메시아 비밀’만이 아니라 ‘마리아 비밀’도 간직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가 ‘목수’ ‘마리아의 아들’ ‘인간’으로 불리면서 ‘하느님의 아들’ ‘메시아’ ‘그리스도’라는 신분이 감추어져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예수의 새로운 ‘종말론적 가족’ ‘예수의 형제’ ‘예언자를 환영하지 않는 친척과 집안’ 등
의 표현 속에서 마리아가 참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했던’ 어머니이시며, 예수를 낳을 때까지만이 아니라 그 후에도 여전히 동정이라는 사실이 감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마) 마르코 복음 3장 31-35절의 말씀 안에서 ‘안과 밖’의 대비를 볼 수 있는데, 이것은 혈연관계로써 예수와 유대를 맺고 있는 사람이라고 해서 다 예수께 속하는 사람이 아니라 예수와의 공동체는 만인에게 개방되어 있다는 말이다. 따라서 이 구절은 친마리아적도 아니요 반마리아적도 아니다. 다만 마리아의 ‘여제자’로서의 모습을 보여줄 뿐이다. 다시말해 이 구절은 신자들이 믿음의 공동체 안에 속해 있을 때에만 그리스도께 속하게 된다는 것을 진술한 것이다.
1.2.3. 마태오
마태오 복음은 일차적으로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알리려는 그리스도론적 목적을 띠고 있다.
구약의 전승에 의하면, 메시아의 조건은 다윗의 후손이어야 했다(참조: 나단의 예언→족보, 요셉). 그렇기 때문에 베들레헴에서 출생해야 했다(미가 5,1-5→고향은 나자렛, 출생은 베들레헴).
또 그 메시아는 평화의 왕, 정의의 왕의 모습으로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느님(임마누엘)이어야 했다(이사 특히 7,14과 9장→동방 박사들의 방문). 마태오는 이러한 메시아의 모습이 바로 예수에게서 성취되고 있음을 증언하고 있다.
그리고 그분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느님이심을 마리아의 동정 잉태가 확인해 준다. 마리아의 동정 잉태는 예수가 하느님의 아들임을 알려주는 징표가 되고 있다. 예수는 임마누엘(Immanuel)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30). 여기서 마리아는 그리스도론을 위한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이 기능을 통하여 마태오 복음은 이사 7,14에서 불투명했던 ‘알마’(almah)의 의미가 ‘동정녀’요 또한 하느님의 계획 속에 예전부터 선택된 분이라는 사실을 아울러 밝혀 주고 있다. 이것은 분명 마리아론을 위한 중요한 발전이다.
예수를 메시아요, 하느님의 아들로 밝히는 과정에서 기능적 역할을 다한, 혈통 계보의 끝에서 두 번째 되는 고리인 마리아는 예수의 공적 생활 속에서는 예수 그리스도 뒷전에 조용히 머물러 있다. 이처럼 마리아는 요셉과 비슷하게 하느님께 순종하는 여종의 모습으로 자신을 드러내고 있다. 이로써 마태오의 관심이 마리아의 인격적인 면보다는 예수의 어머니로서의 역할에 집중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예수 탄생 이후 마리아의 동정 문제는 마태오에게 중요한 관심사가 아니었다.
1.2.4. 루 가
루가의 관심사 또한 예수 그리스도였다. 루가는 예수의 증언자로서 성모 마리아의 중요한 위치와 역할을 의식하고 있었다. 예수는 이미 태어나는 순간부터, 아니 태어나기 이전부터 예언자들에게서 예언되었던 하느님의 아들이시다. 마리아의 동정에 관한 진술은 예수가 참으로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해 주는 한 예다. 때문에 루가는 하느님의 아들에 관한 이야기를 가장 확실하게 전해 줄 사람으로서 “모든 일을 마음 속 깊이 새겨 오래 간직”(루가 2,19.51)하였던 마리아를 채택하고 있다.
루가 복음에서는 마리아의 모습을 둘러싼 어두움이 가장 많이 걷히는데, 마리아는 단순히 그분을 낳고 기른 어머니라는 차원을 넘어서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따랐기에 참으로 어머니가 되실 수 있었고(루가 1,38), 어머니가 되신(참조: 루가 8,21; 11,27-28; 사도 1,14) 분이시다. 그분이 찬양 받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믿음이다(루가 1,45). 찬양 받아야 하는 또 다른 근거인 태중의 아드님은 그 믿음의 결실이다(루가 1,42). 그의 믿음을 비롯하여 그의 겸손(루가 1,38.48.52), 침묵(루가 2,19.51), 성실성(루가 2,22-24.28)은 천사(루가 1,28)를 비롯하여, 사촌 엘리사벳(루가 1,43-45), 목동들(루가 2,20), 예언자 시므온(루가 2,34), 이름 모를 어느 여인(루가 11,27), 온 백성(루가 1,48)이 세세 대대로 찬양해야 할 마리아의 덕목일 뿐만 아니라 본받아야 할 모범이다.
루가에게 마리아론은 그리스도론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특히 인간의 구원 역사 안에서. 마리아는 신앙으로 자신이 받은 소명을 수행함으로써 모든 이들에게 그리스도를 낳아 주었으며, 그리스도에게 가까이 가는 길을 가르쳐 주었다. 그분은 “주님의 어머니”(루가 1,43)시요 “은총이 가득히 받은 분”(루가 1,28)이시며 “주님의 여종”(루가 1,38)이시다. 그리고 아들을 뒤따르는 여인이면서도 또한 교회 회중의 원형이 되는 여인이시다.
루가의 이러한 마리아에 관한 진술은 당시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성모 마리아를 공경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함께 보여주고 있다.
1.2.5. 요 한
요한 복음에는 마리아가 예수의 ‘때’와 관련하여 공적 생활 시작(요한 2,1-11)과 끝(요한 19,25-27)에 등장한다.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마리아는 매우 적극적인 모습으로 그 기적의 중재 역할을 한다. 예수의 모친으로서 그녀는 신비로운 식탁 즉 신랑이신 그리스도와 친교를 나누는 우리의 삶이 감당해야 할 무수한 결핍들을 그분에게 알려 드리는 일에 마음을 쓰고 있다(요한 3,29; 묵시 19,7.9; 21,2 참조).
그러나 예수의 태도를 규정하는 것은 혈연관계가 아니라 오직 성부의 뜻이었다. 기적은 항상 믿음과 깊이 관련되어 있는데(마르 11,23) 귀찮을 정도로 끊임없이 강청하는 기도 자세는 예수에게서 모범적인 기도 자세로 제시되기도 한다(루가 11,8-9; 18,5 이하). 물론 요한 복음이 이 첫 번째 기적 이야기에서 분명하게 드러내고자 하는 것은 예수가 누구인가를 알리는 그리스도론이다. 이 이야기의 결말에는 기적의 결과로 제자들이 예수를 더욱 믿게 되었다고 보도하고 있다. 여기서도 마리아론은 그리스도론을 위해 전개되고 있는 셈이다.
십자가 아래에서 마리아는 예수로부터 다시 ‘여인’으로 불림으로써 창세 3,15에서 예언된 메시아의 어머니라는 사실이 암시되며, 아울러 예수 자신이 메시아임을 드러내 준다. 이 ‘여인’이라는 호칭은 요한 묵시록 12장의 ‘여인’과도 관련된다. 이제 마리아는 단순히 메시아의 모친으로만 머물지 않고 새로운 가족으로서 종말론적 관계가 형성되고 있다. 마리아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따르는 사람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는 제자들에게 어머니가 되신다. 요한 묵시록의 ‘여인’은 그런 의미에서 메시아의 어머니요,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따라서 창세기와 요한 묵시록은 같은 사슬의 첫 번째 고리와 마지막 고리로서 멋지게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요한 복음사가는 마리아 역할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었으며, 복음을 통해 당시 그리스도교 공동체에서 마리아가 차지하는 위치를 엿보게 해준다.
1.2.6. 신약성서의 마리아론의 종합적 결론
가) 마리아에 관한 성서의 진술은 양적인 측면에서는 자료가 적고 질적인 면에서는 풍부하다. 성서의 진술에서 다음을 이끌어 낼 수 있다.
① 마리아는 혈연적 의미에서 예수의 어머니이다.(그리스도의 인성)
② 마리아는 믿음으로도 예수의 어머니이다. 십자가 아래서 마리아는 새로운 종말론적 가족 관계 안에서도 예수의 어머니가 되신다.
③ 마리아가 복되신 이유는 하느님에 대한 믿음과 순종 때문이다.
④ 마리아가 예수를 동정으로 잉태한 사실은 하나의 실제이다.(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
나) 성서에서 마리아에 대한 이해의 단계적 발전:
① 침묵 - 케리그마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집중되어 마리아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키는 단계(바울로)
② 소극적인 진술 - 족보를 중시하는 유대인들과 논쟁을 벌여야 하는 상황에서 외적이고 혈연적인 관계의 차원에서는 예수의 어머니인 마리아에게 그 역할의 중요성을 부여할 수 없었다.(마르코)
③ 적극적인 진술 - 마리아의 동정 모성과 구원 역사에 마리아의 인격적인 참여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마태오, 루가)
④ 깊은 차원에서의 종합 - 마리아는 예수의 공생활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고 그 제자들이 예수가 누구인지를 알게 하고 믿게 했으며 아들의 수난에도 참여했다. 마침내 예수로부터 사랑하는 제자들의 어머니라는 새 사명을 부여받고 있다.(요한)
다) 마리아론, 그리스도론, 교회론의 상호 관련성:
마리아에 대한 성서저자들의 관심은 ‘그리스도론적으로 정향되어’ 있다. 그리스도는 신약성서적 복음선포의 절대적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다. 마리아는 아들 안에서, 아들을 통하여, 그리고 아들 때문에 구세사적 기능을, 구세사적 ‘직무’를 소유한다.
마리아와 구원 역사는 서로 빛을 비추어 준다. 마리아는 구원 역사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다. 자신의 낮춤과 하느님의 들어 높이심, 가난한 자들을 선호하시는 하느님의 선택, 무력한 자들의 승리, 하느님 약속의 성취 등, 모든 것이 바로 마리아에게서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른바 마리아는 시온의 딸의 실현이다. 그리고 실현될 새로운 하느님 백성, 교회의 예형이다. 따라서 마리아에 대한 성서저자들의 관심은 ‘교회론적으로 정립되어’ 있다고도 말할 수 있다.
라) 마리아는 ‘은총이 가득하신 분’ ‘주님이 함께 계시는 분’ ‘세세 대대로 찬양 받으실 분’이시다.
그분은 ‘믿음으로 복되신 분’이시다.
또한 마리아는 신앙의 차원에서 주님의 어머니요,
주님이 사랑하는 제자들의 어머니이시다.
이 점이 믿는 자들의 어머니, 교회의 어머니로 불릴 수 있는 근거가 되고 있다.
성서의 진술들은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시작부터 마리아가 공경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출처: http://cafe.naver.com/cakorea/31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