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촌에 가면 자연스럽게 산책을 하게 된다. 그러나 무작정 걷는 것은 다리만 아플 뿐, 꼭 걸어야 할 곳과 서촌에 매력에 푹 빠지게 되는 카페 골목에서의 휴식을 미리 생각하고 떠나는 것도 좋다. 서촌에서 만나는 고즈넉한 산책 코스를 찾아가 본다.

고궁박물관 앞에서 영추문 지나 신무문 청와대 앞까지



경복궁 서촌에서의 산책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첫째 발길 가는데로 골목골목을 휘젓고 다니다 마음에 드는 문화 공간을 만나면 불현듯 들어가 구경도 하고 커피도 마시는 방법이다. 오래된 골목 마을을 찾았을 때만 경험할 수 있는 방법이다. 또 하나의 산책법은 굵고 짧게 걷는 것이다. 서촌을 가려면 지하철3호선 경복궁역에서 내려야 하는데, 영추문을 지나는 효자로를 산책하려면 4번 출구로 나와 고궁박물관(경복궁 서쪽 끝) 입구까지 일단 가야 한다. 이 길의 공식 명칭은 ‘효자로’로 이곳에서 출발, 영추문과 청와대 앞 분수광장을 지나 청운동사무소앞사거리까지 이어진다. 산책은 고궁박물관 앞을 출발, 돌담길을 따라 계속 걸으면 된다. 영추문을 지나 청와대 초입에서 우회전하면 경복궁의 북문인 신무문이 나오는데, 신무문을 통해 경복궁 안으로 들어갈 수도 있고 되돌아 나와 청와대사랑채에 들려도 괜찮다. 서촌 산책이지만 신무문을 거쳐 팔판동, 삼청동, 북촌으로 방향을 잡는 사람들도 많다.

조선 왕족의 삶, 국립고궁박물관

조선의 왕족 유물을 전시하는 박물관이다. 경복궁 경내 서남쪽 끝 모서리에 위치하고 있다. 2층에 있는 세 곳의 전시 공간은 국왕실, 궁궐실, 생활실로 나눠져 있는데, 국왕실에서는 왕과 왕비를 상징하는 어좌, 조선왕실족보 등이 전시되어 있다. 조선의 궁궐실도 꼭 들려봐야 할 전시실이다. 궁궐은 왕이 나라를 통치하는 정치와 행정의 중심이자 왕실 가족이 생활하는 왕조 최고의 건축물이다. 그래서 궁궐은 조선 시대의 최고의 건축은 물론, 미술, 과학, 천문, 풍수 등 모든 문화적 역량이 집결된 총체적 문화 공간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을 관찰하고 기록하고 숙지하는 것만으로도 관람객의 인문학적 소양은 한 단계 높아진다고 할 수 있다. 어좌 용무늬 보개장식, 경회루 연못 출토 용 등이 전시되어 있다. 왕실의 생활실에 들어가면 붉은칠 자개 이층농, 영친왕비 적의 등 왕족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유물을 만날 수 있다. 고궁박물관에서는 기획전도 수시로 열리고 있는데 2층 중앙홀에서는 9월 30일까지 ‘왕의 상징 어보’전이 열리고 있다. 어보는 고궁박물관의 대표적인 소장품으로, 어보란 국가에서 공적인 용도로 만들어 사용한 인장을 말한다. 오늘날의 국세를 생각하면 된다. 이번 전시에서는 어보를 비롯하여 어책(御冊), 교명(敎命) 등 왕권과 왕실을 상징하는 유물들이 함께 소개되고 있다.

가을을 부르는 서쪽문, 영추문

경복궁의 서문이다. 조선 시대 때 서촌 일대는 문무백관들이 많이 살았다. 그들의 출퇴근 통로로 주로 이용되던 문이다. 이름이 영추문인 것은 서쪽이 방위 상 ‘가을’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영추문 할 때 영(迎) 자가 ‘맞을 영’자다. 영추문에는 작명 당시의 여러가지 심오한 뜻이 있었겠으나 오늘의 생각으로 해석해 보면 ‘가을을 맞는 문’이니 어쩐지 낭만스러운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영추문은 경복궁 관람을 마친 사람이 서촌으로 나가기 위한 출구로 활용할 수도 있다. 영추문의 건축을 살펴보면, 석축을 쌓아 홍예(무지개)문을 만들고 그 위에 문루를 설치한,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양식이다. 영추문은 임진왜란 때 분노한 백성에 의해 소실되었던 것을 고종 때 재건했으나 일제강점기 때인 1926년에 다시 무너졌고 1975년에 재건축했다.

메밀꽃필무렵

영추문 바로 건너편에 있는 오래된 메밀국수집이다. 구멍가게를 하던 할머니 할아버지 부부가 살림집을 개방해서 식당으로 꾸몄는데, 이 곳에서 가면 메밀칼국수, 만두칼국수, 메밀만두국, 메밀부침, 도토리묵 등을 맛 볼 수 있다. 음식 맛이 세지 않고 담담한 편이어서 서촌 분위기와 딱 맞아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곤 한다. 예전에는 한가한 식당이었으나 경복궁 서촌이 서울 사람들은 물론 관광객들의 필수 방문 코스가 된 이후 이 집도 굉장히 바빠졌다. 처음 주문을 할 때 꼭 먹고싶은 것들을 빼놓지 말고 이야기해야 한다. 서울 한복판에 있는 집이지만 조리법은 시골스럽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리는 편이다. 그래서 추가 주문을 받지 않는다.

청와대사랑채

청와대 앞 분수 광장과 청와대로 일대는 외국인 깃발 관광객들의 관광 루트가 된 지 오래 되었다. 대한민국관에는 한국의 이미지와 역사, 전통과 관련된 우리의 아름다움을 홍보하는 전시관으로 ‘세계 속의 한국인’, ‘한스타일’, ‘대한민국 소개’, ‘화폐 속의 인물’, ‘아름다운 대한민국’ 등을 전시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런던 올림픽 관련 사진전이 9월 9일까지 열리고 있다. 서울홍보관에는 서울의 상징, 간이영상관, 세계 도시 서울, 서울 블로그, 서울의 명소, 포토존, 서울나들이, 서울변천사 등이 전시되고 있다. 청와대관에는 전현직 대통령 내외의 활동 모습, 청와대 자전거 시뮬레이션, 사진 촬영 등의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카페거리 자하문로 10길


영추문에서 청와대 방향으로 걷다 보면 왼쪽으로 이어지는 도로가 나온다. ‘자하문로10길’이다. 일명 영추문길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곳은 지역 주민과 가게 세입자들의 노력으로 ‘무엇이든 난무하지 않는 공간’으로 조용한 산책과 휴식을 원하는 여행자들에게 큰 인기를 얻고 있다. 돌담길 초입부터 눈에 띄는 커피집을 살펴보면, 아담한 정취가 매력적인 카페 ‘나무 한그루’가 있고 젊은 느낌이 물씬 풍기는 노란색 북&카페 ‘B612’도 반갑다. B612란 생텍쥐페리가 쓴 불후의 명작 ‘어린왕자’에서 어린왕자가 살던 행성의 이름이다. B612 길 건너편으로 조금 더 올라가면 ‘가가린’이라는 중고 책방이 나온다. 이 골목에 자리 잡은 지 꽤 오래된 이 집은 회원제로 운영되는데, 가입 후 책을 팔 수도, 할인 받아 살 수도 있다. 디자인 서적이 주를 이루며 일상에서 쓰이는 가방, 헤어밴드 등 중고 용품들도 진열되어 있다.

그 옆에는 역시 골목 초장기 멤버인 카페 ‘mk2’가 있다. 미니멀한 실내 디자인과 다양한 테이블, 향기로운 커피, 자유롭게 토론하는 사람들의 풍경이 아름다운 곳이다. 을지로골벵이, 뚝배기불고기, 꽁치김치찌개 등 걸걸한 안주와 술 한잔 즐길 수 있는 ‘효자동사랑방’은 누군가에게 이 골목에서 만나는 가장 반가운 공간이 아닐까? 영추문에 어둠이 내려올 즈음, 이곳에 들어가 술 한 잔과 서울의 오래된 이야기를 나눠보면 어떨까. 커피와 케이크가 맛있는 ‘플렌b’ 또한 자하문로10길에서 빼놓을 수 없는 커피 명소다.

[글과 사진 이영근(여행작가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334호(12.09.1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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