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의 몸과 마음(박태식)
성서의 몸과 마음
박 태 식(서강대 강사, 신약학)
I. 들어가는 말
한국 사람들은 ‘몸과 마음’이라는 표현에 퍽 친숙해 있다. ‘마음은 굴뚝같은데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며 흘러가는 세월을 푸념하고, ‘몸도 마음도 병들었다.’는 말로 뼈 속 깊이 어린 한을 드러내고, ‘몸은 떠나지만 마음만은 당신 곁에 두고 떠납니다.’면서 석별의 정을 아쉬워한다. 하나같이 ‘몸과 마음’이라는 말의 독특한 정서를 보여주는 표현들이다. 그렇다면 같은 정서를 성서에서도 찾아낼 수 있을까?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예수는 과연 여기에 대해 무어라고 대답할까? 차근차근 해답을 찾아가 보도록 하자.
사실 성서에서 우리말의 ‘몸과 마음’에 정확하게 일치하는 표현은 찾아내기 어렵다. ‘몸’과 ‘마음’으로 번역될 수 있는 낱말들이 각각 십 여 개에 달하고, 주로 ‘몸’과 ‘마음’이 따로 따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각각의 개념들은 나름대로의 독특한 의미를 갖고 있어 전체를 통합하는 의미는 더더욱 찾아내기 힘들다. 전통적인 성서 연구 방법론에 따르면 ‘몸’과 ‘마음’에 해당하는 개념들에 대한 언어학적인 접근을 하고, 이어서 신.구약성서에 나오는 몸과 마음에 관련된 모든 구절을 찾아 분석한 다음, 거기서 적절한 공통 분모를 찾아 성서 전체를 관통하는 개념을 구축하는 일이 과제로 주어진다. 문제를 어렵게 풀어나가자면 한없이 어려울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 글에서는 먼저 성서 작가들 중에서 ‘몸과 마음’에 관해 가장 분석적인 접근을 했던 바울로의 이해를 살펴보고(II), 이어서 ‘몸과 마음’에 관한 예수의 생각을 살펴본 후(III), 결론을 내려보기로 하겠다(IV).
II. 바울로의 ‘몸과 마음’
신.구약성서를 통틀어 ‘몸과 마음’에 가장 큰 관심을 가졌던 인물은 바울로이다. 아니, 그리스도교 역사에서 ‘몸과 마음’에 관해 벌어졌던 모든 논의는 바울로에게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몸과 마음’에 연결시킬 수 있는 단어들로 바울로의 편지에 자주 등장하는 것들은 ‘소마’(몸), ‘삵스’(육,살), ‘하이마’(피), ‘쉬케’(혼), ‘프뉴마’(영), ‘카르디아’(심장, 마음), ‘누스’(이성) 등등이 있는데, 이는 모두 바울로의 인간론과 관련된 개념들이다. 이 개념들은 헬라 사고를 기초로 하며, 그 쓰임새가 워낙 광범위해 일괄적으로 가닥을 잡아나가는 일이 여간 어렵지 않다. 예를 들어 ‘소마’(몸)는 한편으로 “죄에 물든 소마”(로마 6,6)이거나 “비천한 소마”(필립 3,21)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성전으로서”(로마 6,19) 소마이며 인간 모두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를 이루어야 하는”(로마 12,4) 소마이기도 하다. 즉, 소마는 긍정적으로도, 부정적으로도 쓰일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가하면 어떤 경우에는 소마가 온전히 가치 중립적으로 사용되어, 그저 지체들의 집합체인 ‘몸’을 뜻하기도 한다(로마 12,4). ‘소마’ 한가지만 예로 들어도 그 정도니 거기에 다른 개념들까지 모두 합치면 더욱 복잡해질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따라서 바울로 사상의 연구자들에게는 그 복잡한 개념들 사이에 질서를 부여하고 체계를 잡아나가는 일이 언제나 중요한 과제로 주어진다.
바울로의 인간론에 따르면 인간은 크게 네 부분, 즉 육, 피, 혼, 영으로 구성된다. 이들 중에서 고체 형태인 육과 액체 형태인 피는 인간의 보이는(혹은, 생물학적인) 부분을 구성하는 요소로 인간의 유한성을 보여준다(1고린 15,50). 사실 고대인들도 오랜 경험을 통해 인간이 죽어 땅에 묻히고 수 십 년이 지나면 흔적도 없이 흙 속으로 사라진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육'과 '피’와는 반대로 인간의 보이지 않는 부분을 형성하는 요소는 ‘혼'과 '영’이다. 그 중에서도 혼은 자연적이고 살아있는 인간을 조건짓는 요소라 죽음이 오면 사라지고 만다(쉬케는 '숨'으로 번역할 수도 있다). 그에 비해 영은 사라지지 않는 요소로 인간의 무한성을 보여준다. 인간은 하느님의 은총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다. 따라서 하느님의 영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인간에게도 걸맞는 그릇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인간의 영이다. 인간의 무한성은 하느님의 무한성에 의해 규정된다는 말이겠다.
동물들은 네 가지 요소 중에 육, 피, 혼(숨)이라는 세 가지 요소는 가지고 있지만 영은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므로 동물이 죽으면, 완전하게 죽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영을 가지고 있기에 죽음 후에도 사라지지 않는다. 바울로에게 있어 ‘영’과 정확히 반대되는 개념은 ‘육’이다. 육이란 인간의 유한성과 나약함을 보여주는 것으로 ‘육에 따라 사는 인간’은 결국 죄의 세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영에 따라 사는 인간’은 죄의 세력에서 벗어나 하느님의 세력권으로 자리를 옮겨 의로워질 수 있는 것이다(義化).
육, 피, 혼, 영을 인간에게 선천적으로 주어진 구성요소라고 한다면, '이성'과 '마음'은 다분히 인간의 의지가 첨가된 요소들이다. 바울로는 이성과 마음을 뚜렷이 구분해 사용하지는 않지만 대체로 이성은 지적인 부분을 관장하고, 마음은 감성적인 부분에 간여하는 요소로 보았다. 이성은 이해하고 계획하고 결단하지만(1고린 1,10;2,16; 로마 14,5), 마음은 사랑하고(2고린 7,3;8,16), 슬퍼하고(로마 9,2), 방종하고(로마 1,24), 괴로워하고(2고린 2,4), 의심하거나 믿으며(로마 10,6-10), 온유함을 품을 수 있다(1고린 4,21).
바울로가 사용하는 ‘소마’(몸)는 앞의 요소들을 두루 갖춘 개념, 혹은 유기체적인 개념으로, ‘몸’ 보다는 ‘자아’가 바람직한 번역이다(필립 1,20; 로마 6,12-13; 1고린 6,15; 9,27; 12,27). 이렇게 ‘소마’를 정의 내리면 앞에서 지적했던 긍정적, 부정적인 의미를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데, 만일 소마가 ‘육’에 따라 살게되면 부정적이 될 터이고, ‘영’에 따라 살면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III. 예수의 '몸과 마음'
이제까지 살펴보았듯이 바울로의 설명은 몹시 복잡한데, 그 이면에 헬라 세계라는 거대한 문화권의 인간 이해가 서 있기 때문이다. 바울로는 헬라 사고 방식에 젖어있던 인물이라는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이 가능한 한 자세하게 인간을 구성하는 요소들을 구별했다. 그렇게 한 목적은 물론 헬라 세계에 살던 이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과 ‘인간’의 관계를 적절하게 설명해내기 위함이었다. 철저하게 사물을 논리적으로 분석하던 헬라 사람들이라면 그 정도는 되어야 복음을 이해했을 것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헬라어 자체가 원래 대단히 과학적인 언어라는 사실도 고려에 넣어야 할 것이다.
헬라 세계의 이해와 비교하면, 유다 세계의 ‘몸과 마음’은 비교적 간단한 편이다. 구약성서의 언어인 히브리어에서 ‘몸’을 의미하는 낱말은 다양한데, 오르(피부), 예쳄(뼈, 골격), 니드네(영을 담는 그릇), 네페쉬(주검), 쉐에르(육체), 바사르(살) 등등이 있다. 그 중에서 ‘몸’을 의미하는 대표 개념은 역시 ‘바사르’이다. ‘바사르’는 외적으로 보이는 인간을 뜻하며 ‘몸’보다는 ‘육’이 더 가까운 번역이다. ‘바사르’는 구약성서에 약 270회 정도 등장한다. ‘바사르’는 하느님이 만드신 인간의 몸이며(이사 45,11-12; 64,8; 시편 119,73; 138,8; 욥기 10,8이하; 31,5), 흙으로 빚었기에 종종 ‘아담’과 동의어로도 쓰인다(레위 13,18; 시편 56,5). ‘바사르’는 하느님이 손수 창조했기에 귀한 존재이기는 하나, ‘모든 인간’(콜 바사르)이 하느님의 눈밖에 벗어나면 홍수로 멸망당하는 신세가 되기도 한다(창세 9,11: 노아의 홍수).
‘마음’을 뜻하는 히브리어는 레브(혹은, 레바브)이다. 레브는 원래 ‘심장’을 가리키는 낱말이지만, ‘용기’(에제 22,14), ‘이해력’(신명 29,3), ‘계획’(예레 23,20), ‘도덕적인 행동’(1사무 12,24)을 고무시키는 역할을 한다.
히브리어에 나오는 ‘몸’과 ‘마음’은 비록 겉으로는 간단해 보이지만, 사실 정확히 규명하기 어려운 개념들이다. 왜냐하면 워낙 함축적인 개념들이라 종종 그 뜻이 모호하게 들리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히브리어는 (시편에서 보여지듯이) 감정 표현에 뛰어난 언어지만, 헬라어처럼 분석적이고 과학적인 언어는 아니라고 한다. 따라서 인간을 이해하는 데도 인간의 다양한 구성요소들은 구별하는 방식 대신 통찰력이 앞서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는 어디쯤 서 있을까?
예수의 말씀을 들어보면, ‘몸’이란 겉보기 인간을 뜻하기도 하고(마태 6,25;10,28), 인간의 한계성을 보여주기도 하며(마르 14,38), 직.간접으로 주검을 표현하는 말이 되기도 한다(마르 14,8.22). 그런가하면 “눈이 성하면 온 몸을 밝을 것이며, 눈이 성치 못하면 온 몸이 어두울 것”(마태 6,22-23)이나 “오른 눈이 죄짓게 하거든 그 눈을 빼어 던져 버려라. 몸의 한 부분을 잃는 것이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 보다 낫다.”(마태 5,29)처럼 수사학적인 상징으로 쓰이는 경우도 있다. 예수가 사용하는 ‘마음’도 하나의 뜻으로 고정되어 있지 않은데, “마음이 깨끗한 사람”(마태 5,8), “마음으로 여자를 범하다.”(5,28), “재물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다.”(6,21), “너희들의 어찌하여 마음에 악을 품었느냐?”(9,4)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매고 나에게 배워라.”(11,29) 등등을 예로 들 수 있다. ‘마음’의 뜻이 얼마나 함축적이고 다양한 지 금세 알 수 있는 표현들이다.
예수는 헬라식 사고가 아니라 유다식 사고를 갖고 있던 분이었다! 그는 인간을 파악하는 데 있어 그 구성 요소라든가, 각 지체의 기능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리고 종종 몸의 일부분을 인간 전체로 확대시키고, 혹은 그 반대 경우의 말씀도 한다. 이는 인간을 바라보는 예수의 시선이 분석적이거나 논리적이지 않고, 직관적이고 통합적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점은 인간에 대한 예수의 대범한 포용력인데, 그는 직관적이고 통합적인 시선을 통해 인간을 언제나 전체적으로 파악해 냈기 때문이다.
예수 주변이 있던 제자들은 언제나 예수를 실망시키곤 했다. 베드로는 예수를 부인하고, 제자들은 예수가 십자가형에 넘겨지자 모두 줄행랑을 놓았다. 하지만 예수는 인간을 전체로 파악했기에, 그런 나약한 제자들을 위해 자신의 ‘몸’을 내어줄 수 있었다: “받아 먹어라. 이는 내 몸이다.”(마르 14,22). 물론 이 말씀에서 ‘몸’은 생물학적인 ‘몸’이 아니라 예수의 ‘전존재全存在’를 뜻한다. 비록 유한성을 가진 제자들이었지만 그들에게 전존재를 내어주는 예수..., 인간에 대한 그분의 ‘마음’을 알려주는 대목이다.
IV. 나오는 말
얼마 전에 현각이라는 벽안의 스님이 쓴 책에서 다음과 같은 구절을 읽은 적이 있다. “참선이란 특별하거나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말, 생각, 행동이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활하면서 가만히 보면 마음과 몸이 따로 놉니다. 먹을 때, 잠잘 때, 걸을 때 우리 몸은 먹고 자고 걸을 지 몰라도 마음은 끊임없이 따로 움직입니다. 참선 수행을 하면 몸과 마음이 완벽하게 하나가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이미 세계 평화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각자의 평화를 이룰 때 그것이 세계 평화입니다...”(『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 1』, 열림원 1999, 188쪽). 이는 현각이 모시는 큰스님인 숭산의 설법 중에 나온 말로, 참선의 목적은 몸과 마음을 하나로 만드는 데 있다고 한다.
구태여 숭산 스님의 말을 빌지 않더라도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은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가르침에 익숙해 있다. 이는 분명히 바울로 보다는 예수에 가까운 사고 방식이다. 게쎄마니 동산에서 예수는 죽음을 앞두고 "공포와 번민에 싸여" 하느님께 기도했다. 그러나 잠시 제자들에게 돌아와 보면 그들은 잠을 자고 있을 뿐이었다. 예수는 제자들이 같이 깨어 기도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마음은 간절하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는구나!”(마르 14,38)라며 제자들의 약한 의지를 꾸짖은 바 있다. 이미 2천년 전에 예수 역시 '몸과 마음의 하나됨'이 갖는 중요성을 간파했던 것이다.
물론 '몸과 마음'에 관한 예수의 정서가 한국의 그리스도인과 잘 통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바울로의 견해도 한번쯤 귀기울여 들어볼 필요가 있다. 바울로는 인간을 치밀하게 분석했고, 겉으로 보이는 인간의 '몸'(=육)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바울로의 견해에 따르면 이 세상에 죄를 가져온 인물은 인류의 조상인 아담이고, 죄의 결과는 ‘죽음’이라고 한다(로마 5,12-21. 특히 21절). 그리고 인간이란 기본적으로 '육 안에 사는 존재'이니 만큼, 필연적으로 죽음에 이르게 된다. 따라서 연역적으로 추론해보면, 육은 반드시 죄의 세력에 영향을 받게끔 되어있는 것이다. 그처럼 인간 앞에 숙명으로 서 있는 ‘죄’라는 세력과, 죽음을 통해 장차 사라지게 될 인간의 물질적인 부분인 ‘육’의 관계를 먼저 이해해야 ‘육’을 바라보는 바울로의 고깝지 않은 시선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제자들의 나약한 모습을 보면서 언제나 자신을 떠올리게 된다. 나의 몸과 마음이 온전히 하나될 수 있다면... 그래서 시원시원하게 예수를 따라나설 수 있다면.... 그런데 이렇게 아쉬워만 하고 있으니 나의 몸과 마음은 여전히 따로 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호명(呼名)
김 형 영
수면에 떨어지는 빗방울처럼
내 마음에 떨어진 말씀 한마디
가족도 일도 고향도 등지고
낯선 땅 그늘진 곳으로 떠나게 하네
퍼져 가는 수면과 함께 떠나게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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