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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지주의 관련
그노시스파 "영지"(Gnosis)는 "지식", "앎"이라는 뜻의 희랍어로, 여기서는 "영적 지식"을 뜻한다. 영지주의는 인간과 하나님의 본질을 묻는 매우 신학적이고, 철학적인 사상이며, 더욱이 현재의 세계와 인간의 이 모순된 상황이 왜 일어나게 되었는지를 우주 창조과정에서부터 탐구하는 대단히 우주론적인 사상이다. 그래서 여기에서는 중세철학과 현대철학에서 볼 수 있는 실존적이고 인식론적인 사상과 함께, 우주창조론, 점성학적인 내용, 신비적 제의, 신화해석학 등을 모두 볼 수 있으며, 특히 모든 종교를 아우르는 보편종교적인 특성을 볼 수 있다. 여기에는 조로아스터교, 그리스도교, 희랍과 로마의 신비종교, 이집트종교, 불교 등, 말하자면 당대에 접할 수 있는 모든 종교의 가르침이 하나의 일관된 관점에서 융화되어 있다. 영지주의자들은 인간의 영혼이 하나님의 본질과 같다고 믿는다. 이 점은 우주의 비밀에 대한 계시와 더불어 영지주의의 핵심사상이다. 그러므로 영지주의에서는 자신의 본질을 아는 자는 곧 하나님을 아는 것이며, 이것이 바로 진정한 구원이다. 우주적 드라마를 통한 구원과정에서는 영지주의가 철저히 이원론(二元論)으로 보이지만, 이 점에서 영지주의는 철저한 일원론(一元論)이다. 그리고 이 점에서 영지주의는 불교의 가르침과 완전히 일치한다. 비그리스도교 영지주의 문서인 「헤르메스 문서」에서는 “네 안에서 보고 듣는 이가 곧 주님의 로고스요, 네 마음이 하나님 아버지니라”(1:6)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헤르메스 사상만의 표현이 아니라, 모든 영지주의의 공통된 주장이다. 영지주의에서는 하나님의 이름이 “사람”이며, 그의 아들의 이름은 “사람의 아들”이다. 그가 구원자로 세상에 와서, 인간이 곧 하나님이라고 가르친다. 그러므로 영지주의의 입장에서는 인간을 구원하는 것이 곧 하나님 자신을 구원하는 것이다. 즉, “구원자가 구원받는다.” 영지주의는 이렇듯 우주의 창조와 구원과정의 비밀을 말할 뿐 아니라, 인간의 본질적 실존에 대해 말한다. 이렇게 실존적 구원과 현실적 구원에 대해 함께 말하는 사상은 지구상에 역사적으로 나타난 모든 종교사상 중에서 영지주의가 유일하다. 그러므로 영지주의는 철저히 실존주의적인 동시에 철저히 현실적이다. 구원자는 인간의 역사 속에 인간으로 나타나 인간을 일깨우고 비밀을 전한다. 그 구원자는 역사 속에서 한 번 나타난 것이 아니라, 여러 번 여러 모습으로 나타났다. 「나그 함마디 문서」에서는 이 구원자가 조로아스터, 아담, 아담의 아들 셈, 세트, 예수 등이며, 빛의 천사들도 구원의 계시자들로 나타난다. 마니는 여기에 붓다를 포함시킨다. 그러나 그것은 마니의 독창성이 아니라, 위에 말한 것처럼 영지주의가 본래 그런 사상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상으로 인해 영지주의는 고대로부터 이른 바 정통 그리스도교의 비판의 대상이었으며, 혹독한 탄압을 받았다. 이들은 중세까지도 남프랑스와 북이탈리아에서 “카타리교”(Catharism)이라는 형태로 그리스도교보다 더 강력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으나, 교황은 십자군을 동원하여 이들을 무참하게 파괴했다. 그들은 영지주의자들을 “이단”으로 탄압하고 처형했으며, 영지주의 문서를 불살랐으며, 영지주의자들은 지하로 숨거나 사라졌다. 그러나 영지주의의 영향은 역사 속에서 사라진 적이 없었다. 이슬람 신비주의자들인 수피들은 이슬람 영지주의자들이라고도 부르는데, 수피즘 자체가 헤르메스사상과 영지주의의 영향으로 생겼다고 말할 수 있다. 유대교 신비주의인 카발라(정확히 말하자면 ‘카발리즘’)와 하시디즘도 결정적으로 영지주의의 영향을 받아 나타났다. 하시디즘은 카발리즘의 전통에서 독자적으로 발전해 나간 것이다. 일반적으로 간과하고 있는 것이지만, 중세 그리스도교 신비주의는 영지주의의 영향을 강력하게 받았다. 독일의 라인강 주변에서 발전한 이른 바 “라인 신비주의”(The Rhein Mysticism)의 배경에는 중세 영지주의 교파의 영향이 강력하게 남아 있었으며, 에크하르트학파(특히 에크하르트의 제자인 하인리히 조이제)와 야콥 뵈메의 사상에서는 영지주의의 소피아신앙이 중요한 요소로 남아 있다. “인간의 회복”을 주장한 이탈리아 르네상스는 그리이스-로마의 고전사상의 영향으로 나타났다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그 사상의 핵심에 플라톤 사상과 카발라와 헤르메스 사상이 있었다.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사상적 중심이었던 마르칠리오 피치노, 삐꼬 델라 미란돌라 등은 모두 이 분야에 정통한 사람들이다. 비잔틴 제국의 몰락과 함께 이탈리아로 전해진 「헤르메스 문서」는 이 운동에 가장 큰 영향을 주었으며, 피치노는 이 「헤르메스 문서」를 라틴어로 번역하여 서방에 알린 최초의 인물이었다. 위에서 보았듯이, 헤르메스 문서는 인간을 곧 하나님이라고 말하고 있으므로, 이러한 사상은 중세의 권위적인 신관과 세계관에 정면으로 대립하는 것이었다. 종교개혁 또한 단순히 루터가 신비주의의 영향으로 일으킨 것이 아니다. 그 배경에는 카발라와 헤르메스 사상이 있었다. 종교개혁자 로이힐린은 그리스도교 카발리스트였으며, 헤르메스 사상을 연구한 사람이었다. 그 동안 이러한 영지주의 사상은 초대교회 교부들이 영지주의를 비판하기 위해 인용한 글 속에서만 볼 수 있었다. 따라서 그간에는 영지주의를 그리스도교의 대표적인 이단사상으로 보았다. 그러나 1945년 남부 이집트의 나그 함마디 지역에서 한 농부가 발견한 13권의 파피루스 뭉치는 영지주의에 대한 그간의이해에 큰 변화를 일으켰다. 이 13권의 파피루스에는 모두 52편의 글이 들어 있었는데, 중복된 글을 제외하면 발견한 글은 모두 45편이었다. 후에 「나그 함마디 문서」라고 부르게 된 이 문서를 통해 우리는 영지주의를 단순히 그리스도교의 이단이 아니라, 하나의 독특한 종교사상 내지 신학으로 보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제 우리는 「나그 함마디 문서」에서 영지주의의 우주론적인 사상체계를 접할 수 있다. 태초에 선이신 하나님에게서 빛의 존재들이 방사(放射)되어 나왔다. 그러나 어느 때 마지막 방사체(‘에온’이라고 부른다)의 실수로 조화를 잃은 존재가 탄생한다. 보통 ‘얄다바오트’라고 부르는 이 존재는 욕망과 질투의 화신이어서, 자기를 낳은 어머니 소피아의 권능을 훔쳐 세상과 인간을 창조하여, 그 속에 그 빛의 존재인 인간의 영혼을 가두고 노예화한다. 여기서 세상과 인간의 비극이 시작된다. 그는 인간세계를 지배하는 자로 군림하기 위해, 인간에게 여러 계명을 주어 그것을 지키게 하고, 인간이 자신의 본성인 빛을 자각하지 못하게 한다. 그러나 원래 빛의 존재인 인간의 영혼은 육체와 세상 속에서 번민하며 고통스러워한다. 어머니인 소피아는 자기 아들의 과오를 보고, 깊이 후회하며 참회한다. 그녀는 빛의 불꽃(인간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 아버지께 간청하여 구원자를 보낸다. 그리하여 어머니의 계획에 의해 빛의 존재들을 감옥에서 구원하기 위한 사역이 진행된다. 구원자는 이 세계의 지배자들(“아르콘”이라고 부른다) 몰래, 그들의 감시를 뚫고 인간세계로 들어온다. 그는 인간을 일깨워, 그의 고향을 기억하게 하고, 그가 어둠의 존재가 아니라 빛의 존재임을 가르쳐 준다. 그는 지금까지 진행된 우주적 과정을 설명해 주고, 인간이 본래 무엇이었으며, 왜 여기에 와서 이렇게 살고 있는지를 알게 한다. 이것을 영지주의의 용어로 구원자의 “부름”이라고 하는데, 인간은 여기서 자신의 본 모습을 각성하고 이에 “응답”한다. 구원자는 온 세계에 흩어진 빛의 파편들을 모아, 다시금 아르콘들의 방해를 뚫고 빛의 세계로 그들을 데려간다. 아르콘들은 세계를 계속 지배하기 위해 인간의 구원을 결사적으로 방해한다. 예수의 죽음은 이러한 방해의 결과이다. 그러나 아르콘들의 방해는 끝까지 성공하지 못한다. 어머니의 지혜는 이러한 방해를 이미 예견했으며, 치밀한 계획에 의해 마침내 구원을 완성한다. 구원자는 다시 지상에 들어와 빛의 존재들을 깨우고, 아르콘들은 심판을 받으며, 어둠은 영원히 사라진다. 「나그 함마디 문서」는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이러한 비밀을 가르쳤다고 말하고 있다. 이 문서는 “해가 뜨지 않는 곳”에 숨겨져 있다가, 때가 되면 나타날 것이라고 예언되어 있다. 이것은 1945년 이집트에서 발견되기까지 항아리 속에 담겨 땅에 묻혀 있다가 세기말에 발견되었다. 이상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영지주의는 영지를 통해 구원을 얻는다고 보는 사상으로, 그 내용은 신화적인 형태로 되어 있으며, 하나님과 인간의 본질을 동일한 것으로 보고, 이를 세상과 대립된 것으로 보면서, 이 세상의 지배자들이 만든 세상이라는 감옥에서 인간을 구원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 종교사상이다. 나아가 영지주의는 이러한 인간의 구원이 곧 하나님 자신, 또는 구원자 자신의 구원이 된다고 본다. 이는 시기적으로 기원전 1세기에서 기원후 2세기 사이에 지중해 지역을 중심으로 강력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으며, 이러한 특성을 지닌 종교는 기득권세력에게 혹심한 탄압을 받으면서도 집단적으로, 또는 개인적으로 면면히 그 맥을 이어왔음을 역사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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