룻기

모압 출신의 과부 룻(‘갈증을 해소하다.’ 또는 ‘애정’이나 ‘우정’을 뜻)이 유다인 시어머니를 따라 유다에 와서 극진히 모시다가 하느님의 섭리로 아들을 낳아 마침내 다윗왕의 증조할머니가 되는 이야기다. 어떻게 해서 모압 여인 룻이 다윗왕의 선조인 보아즈의 아내가 될 수 있었는가를 설명하고, 그들을 유다 땅으로 인도하신 분은 하느님이었다는 확신을 주고 있다.

룻기는 성경에서 유일하게 이방인의 이름으로 불리는 책이다.

▶ 위치

그리스어(칠십인역) 성서와 불가타 성서에서는 룻기의 첫 구절(판관시대에)에 따라 판관기 다음에 위치시켰지만, 히브리어 성서에서는 성문서편에 분류시켰다.

룻기, 아가, 코헬렛, 애가, 에스테르기는 유다인의 큰 명절 때 읽혀지는 축제오경(다섯 두루마리)이다. 룻기는 밀 수확 축제인 주간절(레위 23,15-21; 신명 16,9-11; 사도 2,1)에 읽혀진다.

▶ 집필시기

룻기는 첫머리에 판관시대에 일어난 일이라고 쓰여있다. 이야기의 기원은 그만큼 오래되었다고 보여지지만, 글로 쓰여진 때는 다윗왕조가 세워져 번성하던 왕조시대 전반부(대략 B.C. 10-8세기경)로 보고 있다. 룻기가 실제로 기록된 시기는 바빌론 유배이후로 추정된다. 바빌론에서 귀향한 뒤 이스라엘 사회에는 유다교로 개종한 이방인들이 많았는데, 그들을 배척하지 말도록 종용하는 목적으로 쓰인 듯하다.

▶ 집필동기

룻기는 고부간의 남다른 사랑과 효성, 지혜를 보여주면서, 나아가 과부들의 힘든 삶을 기쁨으로 변화시켜 주시는 하느님의 크신 사랑과 모압 여인까지 구원하시는 보편적인 구원관을 드러내준다.

룻기는 여러 가지 차원의 의미(사회적, 정치적, 종교적, 심미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① 이스라엘의 풍습을 유지, ② 율법과 일상생활을 조화, ③다윗과 그 왕국을 합법화, ④ 교훈적인 이야기, ⑤ 이방인 개종자를 격려, ⑥편협한 민족주의를 거슬러 보편주의를 함양, ⑦ 효도와 충성의 덕을 드높이려는 목적, ⑧ 하느님께서 활동하고 계심을 증명하려는 목적 등이다.

룻기는 확고한 효도의 모범을 제시하고 있다. 동시에 올바른 행동에 대한 원칙과 보상은, 인종에 관계없이 유다인과 마찬가지로 모압 여인에게도 적용됨을 보여 준다. 한 이방 여인이 이스라엘의 가장 존경받는 가문의 한 사람이 되었다는 이야기로, 배타주의(에즈 9-10장; 느헤 13장)와 보편주의(이사 66,18-23; 요나서 참조)의 문제를 지니고 있던 바빌론 유배 이후의 시대에 알맞은 것이다.

▶ 룻 1,1-5 기근이 들어 모압으로 이주하다

판관시대에 엘리멜렉과 나오미 부부는 기근이 심한 베들레헴을 떠나 모압 땅으로 이사했다. 모압족의 평화와 행복을 빌어주면 안 된다는 율법이 있음에도(신명 23,6), 숙적의 땅으로 피난을 간 상황이 일단 예사롭지가 않다.

나오미와 남편 엘리멜렉(‘나의 하느님은 임금님’이란 뜻)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다. 첫 아들 이름은 마흘론(‘질병’이란 뜻)이고 둘째 아들은 킬욘(‘허약’을 뜻함)이었다. 마흘론은 모압 출신 룻을 아내로, 킬욘도 모압 출신 오르파를 아내로 맞이했다. 불행하게도 두 아들 모두 자녀 없이 이국땅 모압에서 죽는다. 고대 근동, 특별히 이스라엘 부족사회에서, 집안의 남자들이 모두 죽었다는 것은, 남아있는 여성이 모든 것을 상실했음을 의미했다(탈출 22,21; 신명 24,19-21 ). 남편의 보호를 받지 못하게 된 여인은 아들의 보호를 받게 되는데, 아들들마저 모두 잃은 나오미는 그 누구의 보호도 받지 못하게 된다.

▶ 룻 1,6-22 나오미가 룻과 함께 고향 베들레헴으로 돌아오다

나오미는 모압 땅에 정착한지 10년 만에, 자신 뿐 아니라 두 며느리마저 홀몸이 된 처지에서 고향 베들레헴으로 귀향하게 된다. 남편과 아들이 모두 죽자 나오미는 며느리들에게 선택권을 주었다. 룻은 끝까지 시어머니를 따라와 이스라엘에서 하느님을 섬겼다. 곧 아브라함과 그의 하느님에게서 멀어진 롯이 룻을 통해 조금씩 돌아오고 있었던 것이다.

나오미가 자신을 “주님의 손에 얻어맞은 이 몸”(1,13)이라고 함은, 고통스런 현실을 원망하지 않고, 하느님께서 주신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급작스러운 죽음이나 질병, 재앙을 죄에 대한 하느님의 징벌로 간주했던 이스라엘의 전통적 사고(신명기적 의식)다. 귀향한 나오미는 더 이상 자신을 “나오미”(우아함과 사랑스런 자)라 부르지 말고, “마라”(괴로운 자, 혹은 쓰라림을 가진 자)로 부를 것을 부탁한다.

“그들이 베들레헴에 도착한 것은 보리 수확이 시작될 무렵이었다”(1,22)라고 함으로써, 고통과 기아에 시달렸던 그들의 운명이 베들레헴에서는 반전을 맞게 됨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 룻 2장 룻이 보아즈와 만나다

보아즈(‘민첩, 재빠름’이라는 뜻)는 나오미의 남편 쪽의 친족이며 엘리멜렉 가문으로 소개한다(2,1). 친족은 히브리어로 “고엘”이라고 하는데 죽은 자를 대신해서 그의 모든 재산을 책임지고 보호할 의무(레위 25,23-28; 신명 25,5-10)를 지는 사람으로, 동시에 모든 것을 소유할 권한을 갖는다. 당시의 관행에서 본다면 여성은 일종의 소유물이었기에, 고엘은 집안의 여성을 책임지고, 동시에 그들을 소유할 권리를 갖고 있었다. 가문의 대를 잇게 하기 위하여 부과되었던 형제로서의 의무였던 “시형제 결혼”이란 일종의 법적제도로서, 후손 없이 죽은 남자의 부인이 남편측의 가장 가까운 친척과 결혼하여 거기에서 태어난 첫 아들을 죽은 자의 자식으로 삼는 제도이다(창세 38장; 신명 25,5-10 참조).

외국인이라 해도 양식을 거둘 수 없는 처지일 때, 남의 밭에서 떨어진 이삭을 줍는 것을 허용하고 있던 이스라엘의 법(레위 19,9-10; 23,22; 신명 24,19)을 전제로, 룻은 아무 밭에라도 가서 먹을 것을 주워오겠다고 나오미에게 말한다. 베들레헴에 돌아와 특별히 할 일을 얻지 못한 룻은 극빈자들이 생계를 유지하던 방법으로 시어머니를 부양할 마음을 먹었다. 결국 나오미의 승낙을 받아 일을 하러가게 된 곳은 보아즈의 밭이었고(2,3), 마침 그 날은 보아즈가 예루살렘에서 돌아와 일꾼들을 만나던 날이었다. 일꾼들과 인사를 나누던 중, 보아즈는 일꾼들 틈에 섞여 있던 룻을 보게 되고(2,5-6), 관리인은 룻을 ‘나오미의 가족’으로 소개하고 있는데, 이는 그녀를 이스라엘 신분의 사람으로 소개하려는 저자의 의도를 드러낸다.

룻이 누구인지를 알게 된 보아즈는 그녀의 형편을 자상하게 배려해준다(2,8-9). 특이한 것은 그가 룻을 ‘딸아’로 호칭한다는 것인데, 아버지와 남편을 잃어 그 어떤 보호에서도 제외된 그녀를 딸로 불렀다는 것은, 보아즈를 일종의 “책임을 져줄 존재”로 암시하려는 의도를 드러낸다. 보아즈의 배려에 감사하는 룻의 모습으로 첫 장면은 마무리 된다(2,13-16). 저녁이 되어 집으로 돌아온 룻은 그날 있었던 일을 시어머니에게 소상히 이야기하고(2,17-18), 나오미는 경작지의 주인에게 감사의 축복을 빌어주고, 밭의 주인이 그들의 가까운 친척이며, 후원자(고엘)가 될 수 있는 사람임을 알려준다(2,19-20).

▶ 룻 3장 룻이 보아즈와 가까워지다

나오미는 룻에게 몸을 단장하고 보아즈의 발치에 가서 누워 있으라고 지시한다(3,5-7). 보아즈와의 결혼에 대한 제안이다(3,1-4). 룻은 시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하는데, 보아즈가 한밤중에 자기 곁에 누워있는 여자를 발견하고 놀란다. 룻은 자기 이름을 밝히고, 그의 옷자락으로 자신을 덮어달라고 청한다. “겉옷을 덮는” 행위는 겉옷 소유자의 권리에 종속됨을 상징하는 것으로(1사무 18,4(요나탄); 1열왕 11,29-31(예로보암)), 이러한 상징과 ‘주님의 날개 밑’이라는 표현은 상통적 의미를 갖는다. 하느님의 겉옷(날개 밑)으로 들어가듯이 그분의 강력한 보호권 안에 있게 됨을 의미한다. 룻의 용기있는 제안에 보아즈는 자신보다 시형제 결혼에 더 적합한 친척이 있음을 알려주며, 그 사람이 권리를 포기할 경우, 기꺼이 보호자가 될 것임을 약속해준다. 보아즈는 그녀가 한밤중에 타작마당에 왔었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면 안된다는 것을 가르쳐주며(3,14), 나오미에게 가져다줄 선물(보리 여섯 되)까지 챙겨준다(3,15).

보아즈와 룻은 자신들이 만들어 갈 수 없는 인생의 ‘여백’을 하느님께 드릴 줄 알았다. 나오미는 하느님께 자신의 모든 여백을 맡겼다. 하느님의 섭리와 계획하심을 믿는 만큼 우리는 하느님보다 앞서지 않고, 기다리며 인내하게 된다. 그것이 하느님에 대한 우리의 가장 기초적인 도리이다.

▶ 룻 4장 룻과 보아즈가 혼인하다

보아즈는 열명의 원로들 앞에서 친족에게, 엘리멜렉의 토지를 매매할 것을 제안하자(레위 25,25; 예레 32,7이하), 친족은 이를 쉽게 수락한다. 보아즈는 이어 엘리멜렉의 소유물 중의 하나였던, 과부가 된 며느리와도 결혼할 것을 제안하는데, 이에 대해서는 난색을 표한다(4,6).

“고인의 이름을 그의 소유지 위에 세워 주어야 하네”(4,5)라는 말은, 나오미로부터 사들인 땅을 매입자 자신이 소유하지 않고, 다시 그 가문의 것으로 넘겨야함을 상기시킨다. 수지가 안 맞는 거래임을 깨달은 친척은 권리를 신속히 포기한다(4,6). 이러한 양도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친족은 보아즈에게 신을 벗어준다(4,8). 이렇게 하여 ‘고엘’이 가지는 권리와 의무는 모두 보아즈에게 돌아간다.

이어 보아즈는 룻과도 결혼할 의사가 있음을 분명히 밝힌다(4,10). 증인으로 참석했던 원로들은 이제 보아즈에게 축복의 기도를 빌어주며, 이스라엘 역사에서 시형제 결혼을 통해 큰 업적을 남긴 여인들(라헬과 레아의 관계, 타마르 이야기 등)처럼 하느님 앞에 축복된 삶을 꾸려나가기를 기원해준다(4,11-12). 드디어 그들의 결혼은 성사된다. 룻은 이제 더 이상 가난한 이방 여인이 아니라 지방의 유지, 보아즈의 아내가 된 것이다. 그런데 정작 본문이 강조하고 있는 인물은 나오미이다(4,13). 룻은 다윗의 조부 오벳(‘시중드는 사람’)을 낳았다는 보도를 끝으로 더 이상 등장하지 않고, 빈손으로 시작되었던 나오미의 불행이 하느님의 축복으로 가득 채워짐을 제시한다.